농어민들에게 '밝아오는 새아침'을!
언론비평
2003-07-17 영광21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첫 전파를 발사한 이후 계속 명맥을 유지해오던 농어민 대상 프로그램이 한국의 방송사에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물론 농어민 관련 방송프로그램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KBS의 '여섯시 내고향', MBC의 '고향은 지금' 등의 텔레비전 프로가 아직 남아있지만 민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오락을 제공하기보다는, 도시인들에게 농촌의 신기함을 알려주는 프로그램들이다.
'밝아오는 새아침'의 폐지에 대해서는 어느 시청자 단체도 논평을 내지 않았다. 전국농민연대, 농업환경생명을 위한 WTO협상 국민연대,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등 농어민 단체들만이 '유일한 농어민 정보 프로그램 폐지 결정을 철회하라'는 반대성명을 발표했을 뿐이다.
농어민 대상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농어촌 인구의 감소와 연관되어 있다. 1960년 2,500만 한국 인구중 농가인구는 58.3%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2년도의 농가인구는 359만 1,000명으로 전체인구의 7.5%에 불과하다.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제일 기준으로 삼는 한국방송 풍토에서 농어민 프로그램은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방송은 소수의 소외계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윤리적인 명제가 아니라 법적 의무이다. 방송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법 제6조 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소수자를 배려할 방송사의 의무는 공영방송이건 민영방송이건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세금이나 다름없는 시청료로 경영권을 보장받는 KBS는 농어민과 같은 소수자들을 위한 방송편성에 더욱 적극적인 배려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익성 제고를 표방하며 새로운 경영진과 이사진이 등장한 KBS에서 변화의 단초로 '밝아오는 새아침' 폐지하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과 진로에 대해서 아직도 시대변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반영하는 뉴미디어 시대의 방송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울에서 지방방송의 편성권과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식민적 방송구조가 사라져야 한다.
즉 농어민의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농어민 관련 프로그램을 늘리고, 도시지역에서는 도시근로자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늘리면 된다.
'밝아오는 새아침'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논밭으로 혹은 어장으로 향하는 농어민들에게 날씨와 농수산물 가격, 그리고 각종 농어업 관련 소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신문 읽을 여유도, 텔레비전 볼 시간도 없는 농어민들에게는 생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마저도 도시인들을 위한 방송으로 채우기 위해 빼앗아갔다. 공영방송인 KBS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채 내린 그야말로 몰지각한 결정인 것이다.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