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서를 하던 초심으로 돌아가라
데스크칼럼
2004-03-25 영광21
국회의원의 선서에는 정당의 자유와 복리라는 말도 없고, 정당의 이익이라는 말도 없다. 오히려 정당이익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양심에 따라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비록 현실 정치가 정당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더라도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정당의 이익과 배치된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라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를 하고 있다.
이런 절체절명의 대국민 선서를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국회에 등원하자마자 망각하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적으로도 그렇지만, 가깝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영광지역을 두고 이야기해도 마찬가지다. "밀재만 넘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잊어버린다."는 말이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선거철에는 그저 먹고 살기에 바쁜 무지렁이인 서민들을 칙사 이상의 대접을 하다가, 선거가 끝나고 국회에 등원하고 나면 언제 봤냐는 식으로 대했던 것이 여태껏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귀하신 분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공통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본질보다는 미시적인 현상에 집착하는 동안,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 야당은 헌정사에 초유의 사태라고 하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탄핵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크나 큰 동의와 작디 작은 갈등으로 국민들에게 둘 중에 하나의 심각한 선택을 하도록 짐을 지워주었다. 하나는 한국사회 미래의 이념적 지향성을 결정할 선택이며 다른 하나는 한 달여 남은 총선에서의 현실정치의 선택이다.
이념적 선택의 대상은 진보와 보수이며, 현실정치 선택의 대상은 총선에서의 후보와 정당이다. 지속적인 민주화를 통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은 기득권을 누려온 부패한 수구세력과 어쩔 수 없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이념적 선택과 현실정치의 선택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으면서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에 선택을 해야 하는 국민들은 늘 안타까움과 어려움이 있다.
이념적 선택은 탄핵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표출되고 있으며 현실정치의 선택은 정당에 대한 지지도와 친노, 반노의 논란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탄핵에 반대하는 것은 이념적 선택에서 기득권적 수구세력에 대한 강력한 거부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에 대한 거부가 곧바로 진보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득권층인 수구세력에 대한 거부가 진보의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현실정치의 선택에서 모두 탄핵을 반대한 열린우리당의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의 두 가지 선택이 이렇게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오히려 역설적이지만 국민들의 건강한 판단력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하겠다.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수구세력의 오만함과 무지함에 대한 냉혹한 심판이며, 당리당략에 눈이 먼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의 표현이다. 탄핵반대의 국민의 목소리는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적 열망이지 친노와 반노를 가늠하는 잣대가 아니다.
지금 국민들이 외치는 함성은 새가 날기 위해서는 좌우의 날개가 필요하듯이, 우리사회의 전진을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진보와 도덕적인 보수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