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와 국세청은 조세형평을 지키길

데스크칼럼 - 박찬석 / 편지편집인

2004-10-07     영광21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TV 뉴스를 보다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멋쩍은 웃음을 웃었다. 나라의 살림을 맡고 있는 재경부와 국세청의 터무니없는 답변이 저절로 실소를 자아내게 한 것이다.

재경부는 정치인이 받은 불법정치자금의 과세여부에 대해 ‘과세가 가능하나 사실상 과세곤란’이라는 비겁한 결론을 내렸다. 이 말을 아무리 좋게 해석을 하려고 해도 ‘법의 규정을 살펴보면 과세를 할 수 있는데 무서워서 과세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밖에 딱히 해석이 되지 않는다.

국세청은 한 술 더 떠서 ‘불법정치자금은 대가성이 있게 마련이므로 알선수재에 해당한다’면서 ‘알선수재죄, 배임수재죄, 포괄적 뇌물 등에 해당할 경우 과세대상 소득으로 열거되지 않아 현재 법규 하에서는 과세의 어려움이 있다’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일반인에게는 에누리 없이 배임수재사건을 기타소득의 사례금으로 보아 과세한 국세청이 왜 높으신 분들에게만 인심이 후한지 알 수가 없다. 새빨간 거짓말은 결국 들통이 나서 국세청은 직무유기를 하였다는 사유로 감사원의 감사청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국세청을 곤경에 빠뜨린 근거는 대법원의 판례이다.

대법원은 “납세자가 범죄행위로 인해 금원을 교부받은 후 그에 대해 원귀속자에게 환원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이상 그로써 소득세법상의 과세대상이 된 소득은 이미 실현된 것이고, 그 후 납세자에 대한 형사사건에서 그에 대한 추징이 확정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금원을 모두 국가에 추징당하게 될 것이 확정됐다고 하더라도 이는 납세자의 그 금품수수가 형사적으로 처벌대상이 되는 범죄행위가 됨에 따라 그 범죄행위에 대한 부가적인 형벌로서 추징이 가해진 결과에 불과해 이를 원귀속자에 대한 환원조치와 동일시 할 수 없으므로, 결국 그 추징 및 집행만을 들어 납세자가 범죄행위로 인하여 교부받은 금원 상당의 소득이 실현되지 아니했다고 할 수는 없다(대판 2002두431)”고 판시하고 있다.

이쯤되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서슬 퍼런 과세당국이 비겁함과 거짓말로 전전긍긍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히 찾을 수 있다. 몰수와 추징에 과세를 한 배임수재죄는 힘없는 백성들이 저지르는 범죄지만 몰수와 추징에 과세를 하지 않는 알선수재죄와 뇌물죄는 고귀(?)하신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이 저지르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같은 범죄에 한 쪽은 과세를 하고 다른 쪽은 과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과세당국이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을 비호해 왔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서 나라 살림의 근본인 세법체계를 멋대로 뒤흔드는 어리석은 관료들에게 자신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미국의 예를 들어주고자 한다.

“대부분의 범법자들이 불법소득을 신고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이 조항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중요한 법적 근거가 된다. 이를 위해 개인이 불법소득을 얻었다고 증빙할 필요가 없으며 신고를 하지 않은 소득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사기 도둑 강도 마약매매 뇌물 그리고 횡령 등으로 얻은 소득은 모두 소득세로 신고돼야 한다(주요국의 조세제도 - 미국편, 장근호, 한국조세연구원)”라는 규정을 두어서 불법소득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과세하고 있다. 어찌하여 머리가 좋다는 양반들이 배울 것은 안배우고 못된 것만 배우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