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있어서 아직은 살만한 세상

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2004-12-24     영광21
한 해를 또 보내야 할 시점에 이르니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만감이 교차한다. 올해에도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며칠 혹은 몇 달 전과 전혀 다르지 않은 신문과 방송의 내용이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신문과 방송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세상은 그동안 뭘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꼬리를 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구성하는 분야는 아주 많다. 그 많은 분야 중에서 정치와 경제를 가장 앞에 열거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생활에 중요하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와 경제는 바늘과 실처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정치를 잘해야 경제가 좋아진다” “경제가 좋아지면 정치도 잘 된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와 경제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오히려 뒤로 돌리는 듯하다. 국민들이 우려한대로 정기국회는 파행으로 끝이 났고, 곧바로 소집된 임시국회도 당리당략에 의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공전과 대립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 라디오 방송의 전화 여론청취 프로그램에서 한 시민은 “국민들을 걱정하고 돌봐주는 게 정치 아닙니까? 그런데 국민들이 오히려 정치를 걱정하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습니까?”라는 말로 정치판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바늘과 실의 한쪽인 정치가 이 지경인데 경제라고 뾰쪽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정부와 국책은행이 간혹 내놓는 지표만 보면 높은 수출실적과 외환보유고로 인해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하지만 잠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수치의 주술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절로 탄식과 한숨이 나온다.

자살 이혼 생계형 범죄 등이 늘고 있으며 각종 요금과 연체율 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서민들에게 높은 수출실적과 외환보유고는 단지 ‘그림의 떡’이고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나아질 것도 달라질 것도 없이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기에 희망이 있는 한 살아간다. 여기서 지난 역사를 되새겨 보자.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재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절대빈곤에 허덕이며 그날 먹을 것을 걱정하던 배고픈 시절이 분명 있었다.

또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했던 억압의 시절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암울하게만 보였던 시절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게 한 것도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알게 모르게 발전해 왔다고 하겠다. 미래가 없으면 현재까지 의미를 잃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인간에게 미래는 바로 희망이다. 불확실한 내세의 복을 위해 현세를 희생하기도 하고, 자신이 죽은 뒤 조국의 장래와 후손의 미래를 위해 본인의 죽음을 무릅쓰기까지 하는 애틋한 동물이 인간이다.

희망이 있었기에 올해를 살았고, 다음해에는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살아가야 한다. 지금이 과거가 됐을 때, 그때는 희망이 있어서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미래가 있기에 힘차게 살아야 한다. 그것을 굳게 믿고 오늘밤에는 가까운 이와 더불어 텁텁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