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 파시

파시’ NO. 16 - 1.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16

2022-01-07     영광21

잠에서 깬 앙얼이 보이지 않는 주뱅을 찾아 나선 모양이다. 그러다 수성당 앞뜰에 사람이 서 있자 해적의 본능에 따라 잽싸게 대숲으로 몸을 숨겼다. 
조소아와 송씨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조소아는 산통 때문에, 송씨는 조소아를 수발하느라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수밖에.
조소아와 송씨가 수성당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어기적거리는 조소아의 걸음걸이 때문에 두 여자의 행보는 더디다.

반대편 대숲에 숨어 수성당 입구를 예의 주시하는 주뱅의 가슴은 숯등걸 타는 듯하다.  
‘지발 저 새끼가 가만 있어야 될 턴디, 자발없이 망나니 칼춤이라도 추믄 참말로 일이 복잡혀 질턴디, 이 일을 어쩌믄 좋다냐!’
주뱅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조소아와 송씨는 앙얼이 숨어 있는 대숲 앞에 다다렀다. 대숲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던 주뱅이 벌떡 일어나 수성당 앞뜰에 섰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보여주면 앙얼이 우발적 행동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다행스럽게 조소아와 송씨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조소아와 송씨가 수성당 입구에서 벗어나자 앙얼이 대숲에서 걸어 나왔다. 주뱅처럼 그의 오른손에도 날카로운 비수가 들렸다.
수성당 앞뜰에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움츠러진 가슴을 폈다. 

잠시 뒤, 앙얼이 격앙된 목소리로 묻는다.  
“저 저년들은 묻허는 년들여?”
“나도 몰르것다, 으떤 년들인지.”
“애린 년은 곰방 애길 낳기 생겼고, 늙은 년은 애미 같은디 데관절 으떤 년들이간디 이 밤중에 수성당엘 왔다 간다냐?”
주뱅의 대꾸가 없다.

“말 좀 히보라고 새꺄? 대관절 으떤 년들인지?”
“그걸 나가 어찌끼 아냐고 새꺄! 쩌그 숨어서 모기가 몸뚱아리를 뜯어 먹어도 꼼짝도 못허고 참말로 뒈질 뻔 혔고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 감을 잡은 앙얼이 더이상 말을 잇지 않다가.  
“애린 년 얼굴은 내가 몰리 것는디, 늙은 년은 말여 으디서 많이 본년인디, 혹시 위도년들 아닐꺼나?”
주뱅의 귀가 쫑긋해진다.

“우리 애갓집이 치엄 아니냐. 나가 애러서부텀 울오매 따러서 치엄 애갓집을 많이 댕겼는디, 저 여편넨 치엄년이 틀림없당께!”
앙얼의 얘기가 솔깃한지 주뱅은 대숲 속에서 엿들은 얘기를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앙얼은 송씨가 위도 치엄 여자가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언능 들어가자고!”
“으딜?”

“수성당 안에 들어가 먹을 걸 찾아 보자고!”
“나아 나는 아안 안들어 가알 갈랑께 너 호온 혼자 들어가믄 아안 안 되것냐?”
앙얼의 말더듬증이 다시 시작됐다. 주뱅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야 새꺄 수성당 할매가 무시 무서서 그냐?”
“하알 할매가 무우 무서서 그은 긍게 아니 아니랑께”
“글믄 어쩌 또 말을 더듬는디?”
“나아 나도 모올 몰리것당께. 수우 수성당 하알 할매 야그만 나오믄 어어 어쩌 이러는디!”

“알었다고 새꺄!”
“무으 뭇을 알어야!”
“저 안에 들어가서 나가 먹을 걸 찾어 볼턴게 넌 여그 꼼짝말고 있으라고!”
“호온 혼자 드으 들어가도 차암 참말로 괜찮것냐?

“글믄 새꺄 괜찮지 구신이 나와가꼬 날 잡어 먹것냐?”
“어어 어찌거나 조오 조심혀야 쓰으 쓴다 잉!’

“알었응께, 여그서 쪼까 지둘라고!”
주뱅이 투덜거리며 수성당 당집 안으로 들어간다. 외짝 바라지 문을 여는 주뱅을 바라보며 앙얼은 몸을 부르르 떤다.
“지이 지발 암일도 없어야 될턴디, 지이발 아암 암일도 으읍 없어야 될턴디…”

주뱅의 등 너머로 촛불이 켜진 수성당 안 제사상 위의 음식과 바람벽에 걸린 화상을 슬쩍 훔쳐본 앙얼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