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농자천하지대본'이 제자리를 찾는 날을 꿈꾸며
2005-12-08 영광21
그러나 이렇듯 아름다운 들판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공업입국'의 이름으로 문전옥답이 뭉텅뭉텅 사라지더니, 또 다시 '지구화'와 '세계화'란 이름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 들판이 사라지면서 농민도 사라지고 있다. 정부정책은 오로지 농지를 없애고 농민을 없애는 쪽으로 치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23일 40대 중반의 한 농민이 죽었다. 농민 전용철씨는 11월15일 서울의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집회에 참가한 뒤에 이렇듯 죽음을 맞고 말았다. 그런데 그의 사인을 둘러싸고 커다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논란의 근원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자리잡고 있다.
24일의 부검 직후에 국과수는 "(머리 뒤쪽의 상처가) 정지된 물체에 부딪혀서 생긴 것"이지만, "누가 밀쳐서 정지된 물체에 부딪힌 것인지, 스스로 넘어져서 부딪힌 것인지는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하루 뒤인 25일 국과수는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가격에 의한 상처는 찾을 수 없었다"며 "넘어져 머리 뒤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결국 국과수는 경찰의 폭력으로 죽었다는 농민단체의 주장을 묵살하고, 집에서 혼자 넘어져서 죽었다고 주장한 경찰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하루만에 결론을 번복한 국과수에 외압이 작용했을 것이란 의문이 강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11월27일 '전용철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경찰의 진압 뒤에 쓰러진 전용철씨를 사람들이 옮기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경찰의 행태는 여러모로 매우 유감스럽다. 폭력적 시위진압은 이미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가을의 부안항쟁에서도 경찰의 폭력은 큰 문제로 떠올랐다. 군사독재시대처럼 최루탄이며 지랄탄을 쏘는 일은 물론이고, 방패와 곤봉으로 사람을 패는 폭력마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전용철씨의 죽음은 농업과 농민의 대대적인 감축을 강행하는 정부와 국회의 정책방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결국 농업과 농민을 우습게 여기는 '살농정책'이 '살인진압'으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이미 개 사료값에도 못미치는 쌀값과 함께 농민들이 죽은 사회인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문구는 농사가 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사실이 그렇다. 농사는 한마디로 식량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먹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니 식량을 만들어내는 농사는 이 세상의 근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심지어 '농자천하지대봉'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우리는 농사를 우습게 여기고,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농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농자천하지대본'은 여전히 만고의 진리인 것이다. 미련스럽게 만고의 진리가 제자리에 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박찬석 /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