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 "김두한" 정치역정
야인시대 "김두한" 정치역정
  • 영광21
  • 승인 200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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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오물투척사건 관련사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SBS 드라마 "야인시대"가 인기를 끌고 있다.역대 국회의원 인명록에 나타난 김두한의 기록을 보면 "김좌진 장군의 2세이자 장자구다리(지금의 광교) 아래서 자고 밥을 얻어 나르던 똘마니였다.

‘입뽕’ 이란 이름의 협객이 돼 종로를 어지럽히던 신마적, 구마적을 때려눕히고 공산당을 때려잡던 옛날 얘기로 유명하다. 3대(종로을․무소속), 6대(용산․한록당)에 걸쳐 재선의원이 됐다. 가는 데마다 뉴스를 만들고 트러블을 만드는 사나이, 6대 국회에서는 오물투척사건으로 구속까지 됐다. 형무소 출입만 해도 무려 80여 회에 달한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이승만 자유당시절 주먹세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깡패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깡패들이 기존의 주먹들과 다른 점은 이들이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들어가 반대 정치세력들에게 정치폭력을 휘두르는 대가로 생존하면서 권력의 비호 아래 힘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승만과 자유당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의 배후에는 사병처럼 동원된 정치깡패들이 있었다.
김두한은 특별한 출생과 반공투사 경력을 바탕으로 대한노총 중앙위원과 자유당위원을 거쳐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주먹시절 자신의 무대였던 종로을구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주먹에서 정치가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한다.

많은 사람들은 김두한이 종로을구 유곽창녀들의 덕택으로 의원이 됐다고 말하는데 사실 여기에는 1954년 한국정치의 특수한 맥락이 있다.그러나 이렇게 정치가로 변신한 주먹출신 김두한 의원(6대 국회의원 용산구 보궐선거에서 한독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됨)이 독재에 항거하는 정치활약이 두드러졌던 때는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에서다.

김두한에 대한 재현, 그리고 그것으로 구성되는 김두한 담론은 크게 보아 3개의 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족주의, 반공주의, 민중적 영웅주의가 그것이다 거기에는 김두한의 존재를 규정짓는 ‘폭력주의'가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