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정말 끔찍한 일이다. 먼 나라의 뉴스나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사건이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에 온 국민은 어안이 벙벙한 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지인이 누구라도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사건이다. 스무명이 넘는 애꿎은 사람을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죽였다는 사건의 규모만이 아니라 완전범죄에 가까운 범행의 치밀함과 참혹함이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리고 너무나 의기양양한 범인의 태도에 열대야의 더위가 도망가고 만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마치 구태의연한 경찰 수사를 비아냥거리기나 하듯 “26명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당연히 할 일을 하였다는 듯 너무나 태연자약한 그의 진술과 현장검증에 유족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한 유족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분명 유영철은 사람의 탈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무릇 삶이란 누구에게나 절대가치다. 스스로 삶을 버릴 수는 있어도, 누구라도 다른 이의 삶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동서고금을 통해 두루 살인을 엄히 다스린 까닭이 거기에 있다. 누구나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에 제일 먼저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살인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족쇄가 채워질 것이다. 그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살인마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치솟는 분노를 애써 다독거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흔히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이어도 수백수천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란 말을 했다. 물론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시대가 용납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일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로운 피를 흘렸던가.
정복전쟁을 일으킨 영웅을 침략의 전범으로 단죄하기까지 인류는 엄청난 민중의 피를 흘렸다. 거짓국익을 앞세운 독재자들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좋은 예이다. 당대에는 대다수 독일인의 지지를 받았던 그가 오늘날에는 한낱 광기어린 전범으로 대접받는 사실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이제 ‘수백수천을 살해하면 영웅’이란 말은 빛바랜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은 수만명을 학살하는 침략전쟁이 버젓이 진행 중이다. 조지 부시에 의해서 자행되는 이라크 침공이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9·11테러’는 물론이거니와 ‘대량살상무기’와도 관련이 없다고 밝혀진 이라크의 죄없는 남녀노소를 적어도 1만여 명이나 살해했다.
사람보다 이윤이 최고가치인 신자유주의라는 그럴싸한 깃발을 내걸고 침략전쟁을 자행하여 예고된 희대의 살인극을 벌이고 있다면 논리의 지나친 비약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석학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미국의 세계 제패전략>에서 부시의 침략전쟁은 세계의 경제적?정치적 분포를 미국에 유리하게 변화시키려는 제국주의 정책일 뿐이라고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을 보면서 미국의 침략전쟁을 생각한 것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오직 자신의 기분과 이익만을 위해서 남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우리 시대의 슬픈 병리적 현상이란 동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반드시 치료되고 극복돼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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