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조국이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광복절을 앞두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약 100여년 전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합병하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고대사 왜곡작업이었는데, 이번엔 난데없이 중국이 고구려사를 제멋대로 왜곡하고 있다. 중국의 영토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자신들의 역사라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지리적 여건 탓에 그들이 ‘막가파’식으로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칼날을 막기에 급급하다. 중국은 현재 세계 제2위의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그들의 과거 역사에 대한 대대적인 재확립을 실시하고 있다. 말도 되지 않는 그들의 역사 왜곡은 앞으로 주변국과 상당한 마찰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전 세계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하여 미국만이 유일한 나라가 아니듯이 지난날 중국이 강대한 나라여서 한국이 그 영향권 아래 있었다고 중국에 속한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또 고구려사 왜곡에 들먹이는 지금의 중국 국토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본류라는 한족이 오랑캐라 폄하했던 북방 외부세력에 의해 지배를 당할 시기에 확장된 것이다.
금번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역사왜곡을 보면서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번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의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식이 현재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경제가 거대해지면서 젊은 세대들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왜곡의 수준을 넘어가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
지난 월드컵과 아시안컵에서 중국의 젊은 세대가 보여준 움직임이 그런 걱정을 더욱 확고하게 한다. 고구려는 근거지를 평양 근처에 두고 그 세력을 요동까지 떨쳤던 한민족의 빛나는 역사이며 그들이 조그마한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시야를 드넓은 대륙에까지 돌렸다는 데에서 우리는 한국의 기상과 진취성을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관은 말 그대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관점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주관적인 논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객관적인 사료와 논리를 갖추지 못하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다. 고구려 역사는 이에 대한 사료와 논리가 충분한 대한민국의 역사이기에 우리는 중국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중국의 팽창주의를 염려하면서 주변국과 벌이고 있는 왜곡과 갈등의 구조를 이해하고 역사적인 대응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청나라의 후손인 만주국이 멸망하지 않고 있다면 그들은 치열한 역사적 논쟁을 현재의 중국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티벳을 제외하고는 중국 땅에 있는 어떠한 민족도 중국정부와 맞부딪쳐서 그들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머잖아 고구려의 주 영토였던 북한은 중국의 변방 역사에 편입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은 그간 남한 및 북한의 고구려에 대한 역사의식을 계속 견재하면서 왜곡해 온 것이 사실이다. 당 태종과 연개소문의 대결이 가장 인기를 끈 경극 중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혁명후 이에 대한 경극이 사라진 까닭도 거기에 있다.
미국과 유럽이 움켜쥐고 있는 세계 주도권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한국, 중국, 일본은 대립과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서양중심의 문화 우월주의와 역사왜곡을 시정하고 아시아의 희망찬 미래의 역사를 써나가는 데 합심하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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