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들녘에 펼쳐진 전주이씨 양도공파의 집성촌
넓은 들녘에 펼쳐진 전주이씨 양도공파의 집성촌
  • 영광21
  • 승인 2004.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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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⑨ 묘량 영당마을
영당마을은 마을앞으로 묘량천이 흐르고 마을앞과 뒤에는 들녘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대부분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농토에 의지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생활터전은 마을을 중심으로 앞뒤로 펼쳐진 농토인데 비교적 자급자족이 가능할 만큼의 가용면적은 된다. 이들 농지는 최근 경지정리가 돼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으며 들녘을 적셔줄 저수지와 영당포강, 70여개 이상의 과정이 군데군데 마련돼 있어 농사짓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영당마을은 전주이씨 양도공파(襄度公派)의 집성촌으로 어느 시기부터 사람이 살게 됐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다만 영당마을 뒤에 고분이나 고인돌군이 분포돼 있는 점으로 보아 고대로부터 마을을 형성하며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좀 더 구체적인 내력은 태조 이성계의 조카이자 양도공 이천우의 증손인 이효상이 성종(1469~1494년)때에 영당마을과 이웃한 영양리 당산마을에 정착하게 된 후 그 후손의 일부가 1600년경 영당마을로 분가해 마을을 형성해 지금과 같은 집성촌이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입구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당산과 장승이 수문장이 돼 버티고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장승배기’ 또는 ‘당산’이라 부른다. 장승배기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왼쪽에 무장서원과 그 안에 조선의 개국공신 이천우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사가 위치하고 조금 더 길을 따라 가면 마을중앙에 복지회관겸 노인정 그리고 3개의 공동우물중 웃시암이 차례대로 자리잡고 있다.

영당마을 뒤쪽(에는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영당시정이 있어 그곳에서 보면 멀리 선동 매화 박주마을과 오봉산 태청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교통편은 영광군청에서 영광~고창 23번 국도를 따라 2.5km가다 깃봉재에서 오른쪽 5번 군도를 따라 4km가면 동쪽에 영운교와 영당마을 표시비가 보인다.

또 일제때 조성된 영당마을앞에서 장동으로 5번 군도를 따라 3km가다 영광~광주간 22번 국도를 따라 가는 길도 있다. 영당이라는 마을이름은 이천우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사가 있기 때문에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자료제공 : 영광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