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박찬석 / 본지편집인
정말이지 제17대 국회가 출범하여 정기국회를 개원했을 때는 속으로는 은근히 지난 국회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시급한 국정과는 무관한 말싸움으로 일관하다가 급기야는 퇴장을 하여 파행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국회법은 “본회의는 회기중 기간을 정하여 대정부질문을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두었다. 이러한 규정에 의거하여 지난달 28일 국회는 이해찬 총리를 출석시켜 대정부질문을 벌였다. 여기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의 안택수 의원이 이해찬 총리가 한나라당을 ‘차떼기 정당’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트집을 잡아서 인신공격적 내용으로 어린애처럼 치졸한 질문을 이어갔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총리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한나라당 전체의원이 퇴장하여 국회는 파행으로 내몰려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서 분란을 최소화시켜야 할 위치에 있는 총리가 지나친 정치적 입장에 서서 발언을 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한번 생각해볼 일은 국회의원이 대정부질문과는 무관한 총리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총리를 가르치려는 오만한 자세로 시종일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인신공격을 했어야 하느냐이다. 그리고 그러한 동료 국회의원에 동조하여 퇴장이란 잘못된 극약처방으로 국민의 바램을 저버려야 했는가 말이다. 정말 분통이 터질 일이다.
하기야 자신들이 국회를 지배하던 지난 16대 국회에서 통과시킨 ‘신행정수도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았는데도 화를 내기는커녕 열렬히 환영을 한 다소 비정상적인 한나라당이다 보니 특별한 기대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입법부의 영역이 사법부에 의해서 침해당했는데도 박수를 치면서 환호를 한 정당이 지구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대정부질문을 하면서 국정을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라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으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훨씬 큰 착각이다. 한 술 더 떠서 등원을 거부하고 총리의 사과가 없으면 국회 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행태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자는 시대적 요구에도 이르지 못한다.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을 하는 시기에 국회의원이 국회를 나간다고 하면 초등학교 학생들도 웃을 일이다.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안겨준 터전을 벗어나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게다가 대부분의 보수언론들이 양비론을 들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태는 가관이다. 국회등원을 거부한 국회의원들도 나쁘지만 총리의 지나친 발언도 나쁘다는 식으로 양비론적 시각으로 이번 사건의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입법부가 행정부를 상대로 각종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점검하는 중차대한 시기이다. 국민들은 갈수록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민생을 제쳐두고 자신들의 감정에 치우쳐서 행동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런 판국에 국회의원 본연의 중요한 일을 팽개치고 집을 나간 국회의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올바른 언론의 행태라고 생각한다.
총리의 사과를 요구하려면 먼저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위임한 소임을 다하고 난 연후에 하여야 맞다. 일에도 순서가 있는 것인데 순서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고 양비론으로 사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것 같아 마냥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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