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佛緣)의 고장 불갑사는 백양사의 말사(末舍)가 아니다
불연(佛緣)의 고장 불갑사는 백양사의 말사(末舍)가 아니다
  • 영광21
  • 승인 2004.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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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관광명소화 사업준공을 앞두고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의 유적 중에 특히 불갑사의 유적만큼은 우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교문화유산이다. 한반도에 불교문화가 전래된 지 1,600여년, 그러니까 우리고장에 불교문화가 전래된지도 지금(2004년)으로부터 1,624년 전에 창건한 불갑사이기에 하는 말이다.

불갑사는 백제 불교문화의 근원을 이뤘던 최초의 사찰로써 불교창건 으뜸을 증표하는 뜻이 담긴 ‘불(佛)’에 ‘갑(甲)’자를 붙여 불갑사를 칭한 사찰명이 말해주고 있다. 이를 불교계 누구도 부정적인 이의를 달지 않고 있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 것이다.

그것은 불교문화 도래 지명이 모두 불교와 연관된 지명으로 당시 백제때 아무포(阿無浦), 고려때 부용포(芙蓉浦), 조선조때 법성포(法聖浦)라는 불명(佛名)이였기에 부인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불갑사는 삼국시대인 384년(백제 침류왕 원년)에 인도의 스님 호승(胡僧)인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중국 동진을 거쳐 지금의 법성포(당시 阿無浦)로 도래해 처음으로 불교문화를 전한 인물로서 불갑사를 창건했다는 설이 그 연유다.

마라난타가 백제에 들어오자 침류왕은 그를 궁궐로 영접해 예를 갖췄고, 이듬해인 2월에 지금의 경기도 광주 남한산 부근에 절을 짓고 열사람을 득도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삼국유사>에 전하는 기록인데 불갑사에 전하는 ‘영광군 불갑사 만세루 증수상량문’에는 마라난타가 남한산 부근에 절을 창건하기 전에 이미 불갑사를 창건했다고 적고 있다.

어쨌든 이 마라난타의 창건설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고증이 뒷받침되지는 않지만 당시의 지리적(아무포, 부용포, 법성포 : 불교와 관련된 지명)여건으로 보아 상당한 가능성은 있다.
곧 마라난타가 당시 중국 동진에서 백제에 입국할 때 절 인근의 법성포를 통해 들어왔으므로, 이곳에 절을 창건했을 가능성을 어느 누구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불갑(佛甲)은 여러 불교사찰 가운데 으뜸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불갑사의 문화유산 바로 세우고 올바르게 다시 되찾아야 한다
절의 창건에 대한 또 다른 견해로 백제 문주왕(475~477)때 행은(幸恩)이라는 스님에 의해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행은 스님의 행장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또 구체적 기록이 없는 추정에 머물러 더 이상의 설명은 어려운 형편이다. 다만 침류왕때의 마라난타를 다른 이름으로 행사존자(行士尊者)라 했으므로 혹시 행은이라는 이름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추측만이 남을 따름이다.

이상과 같이 절의 창건은 사실 어느 때 누구에 의해 이뤄진 것인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1741년(영조 17년)에 <불갑사고적기>를 남긴 진사 이만석(李萬錫)도 창건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 수많은 고찰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창건사실을 아는 곳은 많지 않은 편이다.

어찌보면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선불교 사상이 가져온 기록부재의 결과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 여러 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사찰의 많은 서책과 기록들이 사라져 갔던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왜놈이 한반도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제일 먼저 말살시켰고 불교문화유산을 수탈해 갔다.

그뿐인가! 일제강점기때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불교사찰 30본 말사법’에 의해 한민족의 문화적 정신적 바탕이 되어온 불교문화의 전통을 속된 말로 ‘비빔밥’식으로 비벼놓고 말았다. 이는 1911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총독부 불교통사>와 <조선사찰사료>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우리 고장의 불갑사(백제 침류왕 원년, 384년) 창건보다 248년 뒤늦게야 창건한 장성 백양사(백제 무왕 33년, 632년)에 속한 말사(末舍)의 사찰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가 제정한 30본 말사법에 의해 사찰창건 역사가 짧은 백양사를 전국 사찰 30본산중의 하나로 속하게 한 사찰에다 어찌 불교역사가 깊은 불연(佛緣)의 고장의 불갑사를 말사로 만든 일제 강점기의 <불교통사> 그대로 광복 59년후인 오늘에까지도 통용되고 있을 뿐 불교문화유산의 역사가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고 있는 까닭은 ‘불교재산’ 때문이다.

통탄할 일이다. 아직도 일제식민사관에 빠져 불교문화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정부나 사학가를 비롯한 불교계와 우리 고장마저도 남의 나라 일로, 남의 고장 일로 망각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나라, 내고장의 역사와 향토사 바로 세우기와 우리 문화유산을 제대로 올바르게 다시 되찾는 불갑사가 백양사의 말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와 같이 필자의 기술한 내용대로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현재 법성포에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관광명소화 사업준공을 앞두고 불갑사를 일제가 조작한 불사(佛史)대로 백양사의 ‘말사‘가 아님을 다시 한번 천명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를 부정하고 전혀 이를 기술 언급하지 않는 사학자 불교계 등이 유의할 필요가 있기에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고장이 원불교 발상지로써 원불교 문화유산이 이미 세계화로 뻗어 나아가고 있는 원불향(圓佛鄕)의 고장으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우리고장의 자랑인 원불교 문화유산을 더 이상 필자가 기술할 필요가 없기에 이만 줄이고자 한다.
조남식<영광문화원장/전국문화원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