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살기도 막막한데 정치판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한숨과 욕이 나온다. 국민을 답답하게 하는데 기여하는 정도를 보면 여야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한나라당의 행보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대통령 자리를 내어주고 다수당의 지위를 상실한 후 선거결과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듯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사사건건 시비와 반대로 일관하진 않을 것이다.
국가의 중요한 외교를 위해 대통령이 나라를 떠나는 날 한나라당이 낸 논평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대통령이 없어야 나라가 조용하다며 “좀 오래 있다 오시라”는 논평을 낸 한나라당이 과연 국정을 담당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아무리 당파에 눈먼 야당 대변인이라도 외교를 위해 떠나는 대통령에게 한 말치고는 도가 지나쳤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고스톱을 쳐서 거저 딴 것이 아니다. 치열한 선거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선택받은 지도자이다.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막말을 해서는 안된다. 미국 사회는 선거 때면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극명하게 갈려 첨예한 대립을 하지만 일단 결과가 나오면 승복하고 따른다.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투표 결과에 대한 승복이다. 국민의 선택에 대한 겸허한 승복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선거에 진 그 순간부터 무조건 반대부터 하자는 주술을 스스로에게 걸어온 듯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끝없는 야유와 비난은 결국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에까지 이르렀고, 그로 인해 소수당으로 전락했건만 그 주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선거에 졌다고 무조건 대통령과 여당의 결정에 따르라는 말은 아니다. 대통령이나 여당과 상의하고 협의해 잘하라는 말이다. 상대방이 하려고 하는 것은 무조건 반대하는 반목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지난 22일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려는 4대 개혁법안과 14개 법안 등 18개 법안을 몸싸움을 하더라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18개 저지대상 법안’은 열린우리당이 ‘정기국회 중점관리 쟁점 법안’으로 선정한 15개 법안과 대부분 중복되고 있으니 어찌보면 한나라당은 애당초 열린우리당과는 타협과 대화를 하지 않기로 작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여당이 법안을 아직 상정하기도 전에 몸싸움을 하더라도 무조건 막겠다고 ‘저지 법안 리스트’를 공표하는 상황이니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알 수가 없다. 국민이 선택한 최고지도자를 인정하지 않고 의회 다수당의 법안에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는다면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한나라당의 현재 행태는 건전한 비판보다는 당파적 모습에 더 가깝다. 한나라당은 사사건건 반대만 하지말고 어떤 개혁을 할 것인지를 내놓는 것이 진정한 공당의 자세라고 본다. 지난 날 당파싸움이 어떻게 나라를 망쳤는지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국민들은 현재의 정치판을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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