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마을이야기 / 대마 중남마을
대마소재지에서 1.5km 지점에 있는 중남마을은 소재지에서 대량선을 따라가다가 월산리를 지나면 영명재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남산리에서 하남마을을 지나면 들어선다. 마을 주위에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있으며 예전에는 남산리 1, 2구에서 12당산 중 10당산이 있을 만큼 오래된 마을 역사를 지녔지만 경지정리와 고목으로 지금은 3당산 밖에 없다. 남산노인당 서쪽 바로 옆집 위쪽으로 해서 중남마을에 속하고 서쪽 그 아랫마을이 하남마을이나 한마을 남산마을로 통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산이 겹겹이 쌓여 북쪽 월랑산과 동쪽으로 태청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안고 있으며 가구들은 남향을 이루고 있다.
마을 동쪽으로는 대마면에서 가장 큰 남산저수지가 있어서 마을 대부분의 농경지는 이 남산제의 몽리답으로 농사에 큰 혜택을 받고 있다. 남쪽에는 구천마을과 마을뒤 구릉 정상부에 당산제를 모시는 당산나무와 지석묘 2기가 있다. 특히 이 마을은 예전부터 산세가 좋고 물이 풍부하며 일남산이라 칭할만큼 살기 좋고 주민 인심이 후하다.
이 마을은 남쪽에 산이 있다 해서 남산, 남산리의 중간위치에 있다고 해 중남이라 한다. 일제시대전 수리시설이 좋지 않았을 때 즉, 저수지를 만들기 전에는 남산을 일남산이라 할 만큼 주위 산골짜기에서 물이 많이 내려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이 부근이 농사를 다 지을 만큼 물이 풍부했다 한다.
마을 형성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영광향토문화사료 <향맥>과 <영광군지>, 당산나무를 관련해 추측해 보면 해주오씨 형제인 오 보(1460년)와 오 숙(1467년)이 경북 안동에서 살다 부친이 사망하자 선조의 선산을 따라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남산리 주위가 해주오씨 제각과 선산이 많은 것, 1789년 호구총수에 마을이름이 보이는 것, 송죽1리 죽동마을이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처음 보이는 것으로 보아 먼저 남산리에 정착한 후 그의 후손들이 송죽리로 이사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자료제공 : 영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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