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본 건강가정기본법 유감
가정의 달에 본 건강가정기본법 유감
  • 영광21
  • 승인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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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박찬석<편집인>
한낮이면 볕이 제법 여름의 위세를 떨치다가도 해만 지면 쌀쌀함을 느끼게 하는 일교차가 큰 요즘의 날씨를 보면서 생뚱맞게도 법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법치국가에서 법제정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 법정 복지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의 손길이 필요한 영역에 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제도가 실행되는 시대를 살다보니 아직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영역에서 법제정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법제정이 만능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의 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수요, 행정적 여건, 제도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 타 관계법령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 등 그 사회의 전반적인 과정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만 한다.

또 이런 과정을 모두 거쳐서 제정된 법이라고 하더라도 시행의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점들이 드러나서 행정적인 곤혹을 치르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복지영역에 관한 한 일단 법을 만들어놓으면 그 자체로서 복지수준을 향상시킨 것처럼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정서는 시민단체에서까지 자주 나타나고 있다.

물론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지금보다 복지의 수준이 턱없이 낮았던 시절에는 일단 복지법령 체계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법부터 만들고 보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도적 성과에 대해서 면밀하게 분석하여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행정적인 여건이 성숙하여 법제정의 성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면 당연히 법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법제정만이 해법은 결코 아니다. 그 법에 담겨있는 정신과 법이 추구하는 목적을 제대로 이룰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법만 만든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섣부른 법의 제정은 오히려 현 상황을 더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올해부터 시행되는 '건강가정기본법'이라고 하겠다. 이 법의 제3조는 "가족 모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이 건강가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말은 그럴싸한데 과연 그런 가정이 현실세계에 도대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또 정부는 이상향에나 존재하는 건강가정을 어떻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이 법의 제정을 보면서 성실히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 가정이 불건강한 가정이나 불온한 가정으로 낙인찍힌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마치 국민 모두 착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암기를 강요했던 '국민교육헌장'의 판박이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문제는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법체계의 구성이 아니라 내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충실하게 채워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굳이 이 법이 아니더라도 같은 범주의 '긴급구호법'이나 '자활지원법'의 틀 안에서 얼마든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 지구상에 법이 미비하여 복지국가가 못된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