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정부와 (주)한수원은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에 있어서 1989년 경북 영덕군 남정면을 필두로 이번 2003년 4개 지역을 발표하기까지 약 15년간이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면서도 최적지라고 발표한 지역에서 거센 저항에 밀려 후보지를 선정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지난 시절 후보지 선정에 항상 따라 다녔던 꼬리표는 지정된 곳이 최적지라는 것이었지만, 지정된 지역에서 거세게 반대를 하면 백지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기에 최적지란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게다가 과거 후보지에서 공식적으로 백지화했던 지역을 다시 포함시킴으로 인해 스스로 후보지 선정의 정당성까지 잃고 있는 실정이다.
기실 자의였든 타의였든 간에 상당량의 에너지를 핵발전에서 얻어왔던 우리는 한반도 어느 한 지역에는 핵폐기장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의 핵에너지 정책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는 아니다. 또 현재처럼 불신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는 더욱 아니다.
지역민과 국민들에게 팽배한 불신이 그들로 인한 것이 아니고 정부와 핵추진론자들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위적인 구태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더 더욱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정부와 핵추진론자들이 꺼뻑 죽는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1970년이후 미국의 군사적활동으로 인한 저준위 방사성폐기물들은 상업용과 정부운영의 매립지에 매립되었다.
오늘날 상업용 핵발전소와 병원, 대학, 산업체들에서 배출된 저준위 폐기물들은 철드럼에 넣은 뒤에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운영하는 두 곳의 매립지(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반웰 매립지와 워싱턴주의 리치랜드 매립지)로 옮겨지는데, 이 매립지들은 곧 폐쇄될 예정이다.
네 곳의 다른 상업용 핵폐기물 매립지들은 인근지역의 토양과 하천 그리고 지하수에 방사성물질을 누출하는 문제를 일으켜 폐쇄되었다. 수십년간의 조사 이후, 과학자들은 이러한 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안전한 방법이 있는지에 매우 회의적이다.
더구나 정부는 이번에 선정하는 부지에 고준위 핵폐기물도 저장하겠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소를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과학기술에 의해서도 수만년 동안 방사능을 내뿜는 플루토늄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시설은 주민들만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마저 위협하게 될 것이다.
1985년 미국 에너지성은 상업용 핵발전소에서 나온 고준위 핵폐기물의 첫번째 지하처분장을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의 북서쪽 160km 떨어진 연방정부 소유의 유카(Mt. Yucca)산 사막지대에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소한 260억달러가 투여될 이 시설은 2003년까지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지난 1990년에 준공시기가 최소한 2010년 이후로 연기되었다. 이 처분장은 아예 준공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 암반의 균열, 인근지역의 활성 화산, 그리고 부지내에 36개의 활성단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거의 모든 지역이 활성단층과 지진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문제로 지금까지 그 어떤 국가도 핵폐기물 장기처분에 대해 과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허용받을 수 있는 해결대안에 이르지 못했다.
핵산업이 국가의 기간산업이 된 나머지 스스로 핵산업에 얽매인 유럽연합 15개국중 유일한 핵추진국인 프랑스조차 지난 1991년 이후에 엄청난 대중적 압력에 의해 의회는 정부가 2006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예정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선조들의 결정에 의해 운명지어졌듯이 후손들의 운명이 우리들의 결정에 의해 좌우될 중차대한 시점에 서 있기에 현명한 선택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박 찬 석<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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