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대교회 주님과 함께 한 사랑의 역사 100주년!
한 세기를 걸쳐 영광지역민과 함께 해온 영광대교회는 5월7일 교회설립 100주년을 맞는 이번달, 5월에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5월8일에는 1985년 이후 20번째로 관내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초청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식사와 선물을 나누면서 어르신들을 섬기는 경로잔치를 열었고, 지난 13년 전부터 교회가 후원해서 양육해 온 태국의 옴꺼이지역, 카렌족 학생 20명을 초청하여 한국의 발전된 문화와 복음을 보여주며 성도들의 가정에 민박하는 민간외교의 역할도 감당했으며 5월24일에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경남 남해, 삼천포대교 등으로 효도관광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25일에는 영광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원베네딕트 선교사와 유스미션 찬양팀을 초청하여 청소년을 위한 찬양집회를 개최할 예정이고, 5월 교회설립 100주년의 기념행사의 정점으로 5월27일(금)에는 군민을 위한 찬양 간증집회로 가수 윤항기 목사와 영광출신 인기탈랜트 정애리 권사를 초청하여 영광실내 체육관에서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100주년 기념예배와 기념식은 11월에 다양한 순서와 함께 준비중이다.
선교 1세기를 보내고 선교 2세기를 향하는 영광대교회는 1000여명의 장년 성도와 200명의 중·고등학생, 500명의 유년주일학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독교 복음운동에 전력하는 신실한 교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100년의 받은 사랑을, 앞으로 다가올 100년은 주는 사랑으로 지역과 지역민을 섬겨 서해안의 중심으로 도약하려는 꿈이 있는 영광에 주님으로 인한 사랑의 빛이 비춰지기를 기대하면서 영광대교회의 100년의 역사를 자축한다.
한국 역사에서 20세기는 식민지, 남북분단, 전쟁으로 이어진 혹독한 시련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 신앙은 한국인들에게 널리 수용되었으며, 오늘날 기독교는 한국 민족의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게 되었다. 지난 한 세기의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교회는 정치적 상황의 한복판에 서서 선교활동을 전개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 정치적 기능에서 볼 때, 기독교는 한국인의 고난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광의 기독교 전래 이후 그 성장의 이면에도 이런 아픈 민족사의 역사와 함께 하듯이 영광의 기독교 전래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의 기독교는 다른 지역과 달리 민족의식이 강하고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지역민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미국 남 장로교 배유지(Eugene Bell)선교사의 주도로 영광읍 교촌리 최봉륜의 집에서 최화준, 조현선, 최성백, 박원경 등과 무령리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교회는 이후 영광읍교회라는 이름을 쓰다가 2002년부터 지금의 영광대교회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이러한 특징이 있는 영광대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외부와의 정보교환을 위한 거점 및 연락망의 역할, 지역민들을 위한 근대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간이학교 및 주일학교 운영 그리고 부흥회 및 사경회 개최, 민족문제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지역민들의 본보기 역할 등을 했다. 이와 같이 지역사회에서 영광대교회 교인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원칙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 예를 살펴보자면 일제시대때 교회의 조사(전도사)로 시무했던 위계후를 중심으로 1914년 기독교를 통한 배일(排日)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기독인을 중심으로 민족의식 교육으로 펼친 항일운동은 영광보통학교 생도들에게 민족정신을 불어 넣어 3월14일과 15일에 영광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는가 하면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순수한 신앙의 열정들을 키워왔다.
영광지역 3·1운동 당시 정신적 구심 역할을 한 위계후의 아호(雅號)는 해인(海人)이다. 위계후 조사는 1884년 11월15일 전남 담양군 창평면 정화리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내는 동안 친외가의 당숙인 고하 송진우와 창평 고직각의 사위인 인촌 김성수와도 교분을 맺어 서로 뜻을 같이하는 사이였다. 이를 계기로 영광에서의 항일운동을 당시의 기독인들이 주도해 갔다.
또 영광대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투옥되어 고통당했던 김방호 목사와 편진옥, 노동악등의 신앙의 절개를 지켜나갔던 값진 교회이다. 특히 김방호 목사는 이후 교회를 사임하고 염산교회에서 시무하다 한국전쟁을 맞아 그의 가족과 함께 순교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교회가 불탔고 성도중 이광연 집사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폭도들에 의해 죽창과 몽둥이로 살해된 후 시체는 법성 앞바다에 버려지는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순교자의 피와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는 노력이 지금의 영광대교회가 있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보며 전국의 읍단위 교회로는 그 규모나 교세로 전국에서 제일 앞선 교회이다.
영광대교회는 은혜로 달려온 100년 하나님께 영광을, 주님과 함께 한 사랑의 역사 100년의 역사를 100년사로 담고 있으며 교회사에 비치는 빛바랜 사진들이 지난 역사를 웅변해주고 있다.
이제 영광대교회의 100년의 역사는 영광군이 갖게 되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겠다. 이는 기독교가 20세기 격동하는 시기에 민족의 아픔과 함께 지역민들에게 종교적 사랑으로 선교되어 왔음을 부인 할 수 없기 때문이며 영광이라는 지역과 협력적 행위를 촉진시켜 기독교가 사회적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신뢰였고 규범이었고 네트워크의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고 기독교의 속성상 영광땅을 변화시킬 사랑의 원자탄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는 영광대교회가 한국전쟁이후 불타버린 교회의 건축과 전도활동에 열심을 다해 지역사회에 수많은 인재들을 기독교 가치관으로 길러 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광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여, 정통 칼빈주의 신학의 보수와 행정을 통한 질서유지, 전도를 통한 천국확장을 목표로 21세기 비전을 다음과 같이 세우고 전 교인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실천하고 있다.
첫째, 영광대교회는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로 주님의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미래 사회의 주인공으로 세상과 교회에 파송하며 전교인이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세상을 이기기 위해 작정 새벽기도를 드리며 말씀을 듣다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교회이다.
둘째, 영광대교회는 비전을 품고 전진하는 교회이다.
영광대교회는 영광군민들이 잘 되도록 매일 매일 기도하고 군민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3개(영남, 영송, 영서)의 교회를 분교하였으며 지역사회의 제반필요를 긴밀하게 채우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헌신중이며 국내와 해외를 도와서 선교후원을 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물질로 봉사하고 있다.
한편 태국 옴꺼이의 버려진 산족 아이들 100여명을 양육하고 있는 미래를 계획하는 교회이기도 하며 북한 평양 근교에 있는 하단 제3 결핵요양원 400명을 책임 후원하는 교회이다.
셋째, 영광대교회는 복받는 교회이다. 영혼이 구원을 체험하니 범사가 잘되고 평강의 복이 넘치는 교회이고 문제를 해결 받고 자녀가 잘되는 복을 받으며 인생이 달라지며 끊임없는 갱신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사도적 소명을 완수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넷째, 영광대교회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교회이다. 예배와 구역모임 그리고 일상생활을 통한 성도간의 친교를 다지며 평신도를 일깨워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진정한 동역자로 세우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현 담임목사인 목회학박사 김정중 목사는 광신대학교 이사장, 개혁신학연구원 이사, 학교법인 숭일학원 이사 등으로 후학을 길러내는 일에 열정도 있으시고, 개혁교단 총회장을 역임하신 한국교계의 지도자이시다.
미국 남 장로교 배유지(Eugene Bell)선교사의 주도로 영광읍 교촌리에서 시작된 영광대교회는 1978년에 부임한 김정중 목사가 현재까지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고 김정중 목사는 목양일념의 확고한 목회관으로 전도를 통한 천국확장, 교육을 통한 진리보수, 행정을 통한 질서유지를 실천하는 교회로써 역사와 전통을 병행한 모본적인 사명을 감당하여 왔으며 또 다른 100년의 역사를 힘차게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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