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득히 먼 옛날 불러 보았던 이름이다. 나는 18세 고등학교 졸업 직후 사랑하는 아버지를 여의는 불행을 경험해야 했다.
7남매 중에서 유난히도 나를 가장 예뻐해 주셨던 아버지, 다른 형제들의 질투심을 유발시킬 정도로 내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나!
가부장제도 하에서 그 분은 항상 가장 표준적인 아버지셨고, 언행은 모범적이셨으며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살으셨다.
나의 유년시절은 너무도 유복했고 행복으로 가득 찼었다. 아버지의 부재현상이 만연한 지금 같은 세상에서 그 분을 생각해보면 그 분은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갖추었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했고, 조건없이 주는 사랑으로 부담이 되는 요구도 하지 않으셨으며, 늘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기에 난 아버지의 그림자를 교훈삼아 스스로를 깨우치며 생활할 수 있었다.
오롯이 주어진 가장의 임무를 그 분은 소리없이 실천하셨고, 여유롭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일관하셨다. 그토록 자애로우시며 근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30여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아마도 그 분과의 아름다운 추억과 흡족할 정도로 베풀어주신 사랑 때문인 것 같다.
그다지도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어려운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병마와 싸우시다 끝내는 이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던 날, 참지 못하는 통증에 몹시도 괴로워하시며 그 고통스런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시다 내 조막손을 당신의 떨리시는 손으로 꼬옥 잡고 말씀을 잇지 못하시던 모습이 가슴에 남아 아직도 가끔씩 눈물을 짓곤 한다.
그 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생각하니 새삼스레 밀려오는 그리움과 고마움으로 목이 메인다. 이젠 "아버지"하고 소리쳐도 대답이 없으신 아버지이지만 언제나 가슴속에서 함께 계시며 나를 그 옛날처럼 자상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것 같다.
5월은 가정의달 이라서 그러는지 내가 자식을 키우고 있어서 그러는지 아버지 생각이 자주 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생활의 기본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의 급속한 해체에서 야기되는 소식을 들을 때면 더더욱 아버지의 옛정이 생각난다.
아버지! 자식들은 항상 아버지의 고마움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사는 게 바빠서'라는 핑계로 아버지를 잊어버리고 사는 이 못난 막내아들이 갑자기 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노라니 한없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고이고이 잠드셔서 그다지도 예뻐해 주셨던 막내아들 또 당신의 손녀딸들, 올바르고 건강하게, 맺는 인연마다 상생선연되게 돌봐 주시고, 부디부디 당신이 계신 곳에서 편히 쉬소서.
당신의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2005년 5월 하순에 막내아들 올림
유은종<원불교 천지보은회>
저작권자 © 영광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