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배움터가 명당, 마을 융성 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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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21
  • 승인 2005.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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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41 - 묘량 매화마을
묘량면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매화(梅花)마을은 마을앞으로 묘량천이 흐르고 묘량중앙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위에서 보면 마치 매화꽃 잎이 떨어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마을 동서남북 모두 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멀리 동쪽으로는 태청산과 장암산이 길게 자리잡은 모습이 하나의 병풍처럼 마을들을 감싸안고 있다. 마을 바로 옆 동쪽에는 박주마을, 남쪽에는 선동마을, 멀리 서쪽에는 영촌과 당산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이 최초 형성된 것은 언제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박사도가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김 씨가 입향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에 의하면 광주이씨인 이근호의 증조부인 이병호가 삼효리 2구 석전마을에서 이곳으로 이사와 생활터전을 잡았다 한다.

마을 이름의 문헌상 기록을 보면 1789년 호구총수에는 기록돼 있지 않고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묘장면 발산리라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1917년 조선면리동일람에는 운암리 영당리 박주리 발산리 부성리 효성리 영촌 일부를 묘량면 영당리로 개편했으며 1987년 행정구역일람은 법정 영당리, 행정 영당2리, 자연마을 매화마을로 기록하고 있다.

예전에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바리때처럼 생겼다 해 발산(鉢山)이라 했다. 그후 매화마을로 변경됐는데, 이름 그대로 '매화꽃' 마을이라는 뜻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 매화낙지형의 명당이 있다고 해 수 많은 지관들이 찾아와 명당을 찾았으나 찾지를 못했다고 전해지며 그 뒤 이 마을에 초등학교가 세워졌는데 이곳이 매화낙지형국의 명당자리라고 전한다.

또 일설에 따르면 매화마을 동북간에 있는 산에는 꿩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이 산에 묘를 쓸 때는 묘비를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꿩이 날아가려면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 영광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