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의 목소리를 빌어 역사와 고전古典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전하는 코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구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총궐기한 상황이다.
한국 수구 기득권 세력의 문제와 병폐는 역사의 차원에 놓여 있다. 친일, 독재권력이 남긴 부정적 잔재 등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가 강하게 발목을 잡은 채 역사의 진전을 방해하고 있다. 이에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창궐하고 있는 병폐와 그 당사자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들을 향해 역사의 목소리로 경고하고자 한다.
지금 이 병폐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가 어둡기 때문에 더욱 절박하다. 관련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분들은 유튜브 채널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을 시청하시기 바란다.
/ 편집자 주
의과대학의 실상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심각한 불균형과 차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야 다양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의료인의 수를 늘리는 것이란 점에서는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고 임금문제 등에서 부당한 차별을 당하는 것도 아닌 이상 파업이나 진료 거부는 명분이 없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는 단순한 돈벌이가 결코 아니다.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동반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존경 받을 수 있는 고귀한 직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사명감과 책임감은 갈수록 약해지고 그저 특권의식만 고집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이 되고 있다. 여기에 나쁜 정치에 물든 협회의 집행부가 그나마 남아 있는 존경심마저 팽개치고 있다.
또 이렇게 묻고 싶다. 언제 한번이라도 이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 세상을 보다 나은 쪽으로 바꾸기 위해 들고 일어나 본 적이 있었나? 고귀한 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 했노라 자신할 수 있나?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고귀하다. 하지만 행위자의 순수한 사명감, 책임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손에 쥔 칼이 사람을 살리기보다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변할 수 있다. 존경은 경멸로 바뀐다. 어느 분야가 됐건 고귀한 존재로 인정받으려면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른바 기득권층에 있는 거의 모든 분야가 이 정신을 망각한 채 집단 이기주의에 몰두하고 있다. 사회를 아주 나쁜 쪽으로 이끌고 있다.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기생해온 세력이나 계층은 시간의 차이는 있어도 역사적으로 예외 없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 도태 당했다.
지금 의학계에는 세상의 큰 변화를 읽고 역사의 큰 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크고 바른 사람이 필요하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칭송에 신의神醫 편작扁鵲은 “나는 살 수 있는 사람을 살렸을 뿐이다”며 겸손해 했다. 그는 남녀노소, 특정분야를 가리지 않고 천하를 누비며 자신의 의술을 베풀었다.
편작은 진맥은 물론 침과 약 모두에 정통한 명의였으나 자신의 의술이 편작을 따르지 못해 편작을 시기질투한 진나라의 태의령太醫令 이혜李醯란 자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화타는 소설 《삼국연의》에서 명장 관우의 어깨뼈를 깎아 독을 빼내는 외과수술 장면을 연출하여 많은 독자를 흥분하게 했다. 물론 이 대목은 사실이 아니지만 그가 외과전문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화타는 또 최초로 마취제를 발명했다. 훗날 조조의 미움을 받아 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옥사했다.
화타와 거의 같은 시기의 장중경(약 150~215년)이란 걸출한 명의는 풍부한 임상실험을 바탕으로 중국 의학사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남겼다.
그는 조정의 거듭된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 앉아 환자를 진료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좌당의생坐堂醫生’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집에 앉아 있는 의사’라는 뜻이다. 그의 출신지인 남양(南陽, 난양)에는 그의 사당과 무덤이 있는데 사당의 편액은 ‘의성사醫聖祠’다. 그를 ‘의성’으로 추앙한다는 의미다. 장중경은 중국 의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의학이론(의론醫論), 의료기술(의술醫術), 의사로서 가져야 할 덕(의덕醫德)을 두루 겸비한 명의로 그 이름을 길이 남기고 있다.
중국 의학사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로 동봉(董奉, 220~280년)이 있다. 지금의 복건(福建, 푸젠성 출신)인 그는 치료비 대신 산에다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게 한 특이한 의사였다.
이렇게 해서 살구나무가 자라면 그 열매를 따서 창고에 저장했다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곡식과 바꾸었다. 그리고 가뭄이나 홍수가 들어 백성들의 식량이 부족하면 동봉은 자기 곡식을 풀어 빈민을 구제했다.
여기서 행림춘만(杏林春滿, 살구나무 숲에 봄이 가득하다) 또는 예만행림(譽滿杏林, 살구나무 숲에 명예가 가득하다)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모두 동봉의 의술을 칭송하는 표현이자 훗날 의술이 뛰어난 의사를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또 여기서 중의(中醫, 중국 의학 또는 중국 의사)를 가리키는 행림(杏林)이란 단어도 파생됐다.
동봉의 고향인 복건성 복주(福州, 푸저우) 장락(長樂, 창러)에는 그의 사당이 있는데 그의 반신 소상 위에 걸린 편액에는 ‘현호제세(懸壺濟世)’라는 네글자가 쓰여 있다. ‘약이 담긴 호로를 걸어 놓고 세상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역시 명의가 의술을 베푼다는 뜻이다.
우리네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의사로서 의덕을 갖추고 싶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누리는 존경과 부에 걸맞은 휴머니즘을 갖춘 의사가 되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치료해 세상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가? 그와 같은 오블리주를 기꺼이 실천함으로써 노블레스를 얻고 싶지 않은가?
그러고 싶다면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기생하려 하지 말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을 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라! 기득권은 바른 마음으로 국민에 봉사하고 사회에 헌신하면 자기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함께.
김 영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