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 영광21
  • 승인 2021.12.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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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4 - 1.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⑭

대돌목 동북쪽 갯가엔 ‘소돌목’이라는 마을이 있다. 대돌목의 초가집은 70여채인데, 소돌목의 초가집은 10여채다. 가구 수나, 인구 수나, 마을의 크기나 소돌목은 대돌목보다 일곱 배쯤 작다. 
소돌목 마을 앞 자갈밭과 갯벌도 대돌목의 그것처럼 앞도 물길이 닿는다. 바닷물이 ‘작게 돈다’해서 소돌목이라는 지명을 갖게 된 모양이다. 
대돌목엔 소돌목 외에 몇개의 작은 마을이 딸렸다. 마을 뒷산이자 주산인 까끔 오른편의 메바꿀 아래엔 살막구미라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서 앞도 쪽으로 뻗어 나간 곶串엔 석구미라는 마을이 있다. 
대돌목 까끔 너머 갯가 근처 산자락엔 미영구미와 논구미가 있다. 사람들은 까끔 왼편의 높은 고개를 넘어서 이 두 마을에 오간다. 역시 대돌목에 행정과 생활기반을 둔 작은 마을이다.  
대돌목 앞바다인 앞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석구미마을 뒷산 끝자락의 돌산이다. 석구미 끄트리라 부른다. ‘끄트리’나 ‘끄터리’는  ‘끄트머리’의 전라도 사투리다. 
석구미 끄트리 앞바다는 물이 빠르고 넓게 돈다. 울돌목에 비교할 순 없지만 칠산바다의 수만 갈래 물길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물 흐름이 빠른 편이다. 물론 그 폭은 매우 넓다. 어쩌면 대돌목의 지명은 예서 탄생한 듯하다. 
걸어서 대돌목에서 소돌목으로 가자면 대돌목 왼편 어귀인 당산물을 거쳐야 된다. 수백년 동안 세찬 갯바람을 견뎌낸 아름드리 팽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는 당산물은 대돌목의 당산堂山 입구다. 위도 동북쪽에 있는 여러 마을인 치엄, 진말, 시름, 벌구미, 파장구미 등지로 이어지는 산길의 첫머리다. 
대돌목 당산물에서 소돌목까지의 거리는 약 5리. 폭 좁은 산길을 따라 작은 재, 큰 재를 잇따라 넘어야 된다. 작은 재와 큰 재 사이의 오른편 갯가엔 염나무구석이 있다.   
밀물 때면, 석구미 끄트리에서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바닷물이 드넓은 대돌목 갯벌을 적시며 깊숙하게는 염나무구석까지 닿는다. 소돌목 똥섬 갯바위는 염나무구석보다 먼저 바닷물에 잠긴다. 염나무구석에서 똥섬 너머의 갯가로 밀려든 칠산바다의 물흐름이 석구미 끄트리보다 빠르지 않고 그 폭도 좁아 소돌목이라는 지명이 나왔나 보다.
대돌목 왼편 당산물은 대륙봉이라는 산뿌리에 있다. 대륙봉은 대돌목의 주산인 까끔과 이어져 있다. 까끔은 큰 까끔과 작은 까끔으로 나뉜다. 작은 까끔은 대돌목 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인 대룡샘 뒤편의 산고개인 응우그와 대돌목 왼편의 야산인 솔바구를 아우르는 마을 뒷산이다. 대돌목에서 위도 유일의 암자인 내원암을, 발품을 줄여 찾아가자면 응우그 고갯길을 거쳐야 된다.          
대돌목의 좌청룡이자 당젯봉에 해당되는 대륙봉은 험준한 돌산이다. 정상의 깎아지른 절벽 위엔 원당願堂이 있다. 돌담 너머로 드넓은 칠산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원당은 매월 음력 정월 초사흗날, 대돌목 사람들이 한해의 풍어를 빌고 마을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을굿인 띠뱃굿의 여러 신들을 모신 당집이다.
당산물 팽나무숲 아래엔 무당집이 있다. 대돌목의 띠뱃굿 뿐만이 아니라 정초에 위도 여러 마을에서 지내는 동제洞祭를 주관하는 당골네 한씨가 살았던 초가집이다. 지난해 칠순을 갓 넘기고 이승을 떠난 당골네 한씨는 조상 대대로 무당의 신분을 이어받은 세습무였다.    
조소아는 당골네 한씨의 양녀다. 신병神病을 앓고 무당이 된 조소아는 강신무이지만 당골네 한씨를 신어미로 모셨다. 
수성당에서 조소아가 고모라 부르는 나이든 여자는 올해 나이 쉰둘이다. 벌써 북망산천으로 떠난 조소아의 아버지와 육촌 간이다. 성씨는 송씨다. 
“아직도 멀었냐?”
시누대 대숲 앞에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는 조소아 쪽으로 다가오며 고모 송씨가 묻는다. 왼손에 보따리를 들고 있다. 
“어쩌 이런당가? 똥도 마랍고, 오짐도 마란디, 어쩌 똥도 안 나오고, 오짐도 안 나온당가?”
“아그가 나올 때 되믄 다 근당께 어쩌 내 말을 못 알어 듣고 이러냐?”
“고모가 보기엔 애기가 금방 나올 것 같은가?”
“아그를 한두 번 받어 봤간디. 죽은 너그 어메가 널 날 때도 내가 받었다. 이날 이때까장 위도 아그들 한 오십 멩을 내 손으로 받었응께, 지발 내 말 좀 들으란 말이다!”
대숲에 숨어 있는 주뱅은 두 여자의 얘기를 엿듣는다. 출산을 코앞에 둔 산모가 도대체 무슨 일로 수성당에 찾아와서 저러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어 땅에 바짝 붙인 봉두난발을 왼손으로 쥐어뜯는다. (계속) 

※ 농업경제신문과 동시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