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얼이 수성당 입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상한 움직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앙얼은 비수를 움켜쥔다. 다행히 그 움직임의 주체는 호랑이도, 귀신도 아니고 분명 사람이었다.
점점 다가오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송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 으따 어어 어쩌면 조오 좋다냐. 여어 여그서 지이 지다리고 있다가 저 저 여어 여편넬 마안 만나야 되는 것여, 아아 아니믄 피이 피해야 되는 것이여.’
앙얼의 갈등은 골이 깊다. 그렇지만 순간적 결단은 쉽지 않다.
‘오오 옴마, 저어 저 여어 여편네가 뒤이 뒷걸음질 치네!’
수성당 앞뜰에 비수를 들고 서 있는 봉두난발을 송씨가 본 모양이다. 왜구인지, 산적인지, 해적인지 모를 불한당이 서 있자 걸음을 멈춘 송씨는 한발 두발 뒷걸음질 치더니 뒤돌아 줄행랑을 놓았다.
“미이 미치고 화 화 환장허것고만 잉! 이 이 일을 어쩌면 좋다냐!”
달아나는 송씨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앙얼은 발을 동동 구른다. 송씨가 죽막동이나 격포 관아에 가서 수성당에 불한당이 나타났다고 알리게 되면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앙얼의 머리에 쥐가 날 수 밖에.
“주우 주뱅아!”
앙얼이 수성당 안 주뱅을 부른다.
“먼일인디 새꺄!”
주뱅이 수성당 안에서 챙긴 먹을거리를 들고 나오며 투덜댄다.
“크은 큰 일 나아 났고만”
앙얼은 숨이 넘어가는데, 주뱅은 느긋하다.
“아니 또 무슨 일이 났간디 이렇기 자발을 떤다냐. 호랭이라도 나타났간디 그러냐?”
“호오 호랭이가 나아 나타난 것 보담 더어 무우 무선 이이 일이 벌어졌는디, 이 이 일을 어어 어쩌면 조오 좋다냐?”
“글씨 무슨 일이간디 그러냐고?”
앙얼은 잠시 전 일을 소상하게 주뱅에게 알린다. 물론 숨 가쁜 말더듬증으로 말이다.
“꺽정 말고 이거나 처먹어 새꺄!”
주뱅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수성당 안에서 가지고 나온 과일을 앙얼에게 내민다. 앙얼은 과일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야 새꺄, 니 뱃속으 그시랑이 모가지로 기어 나올라고 헌담서? 그리서 내가 너 굶겨죽이지 않을라고 여까지 기어온 것 아녀!”
주뱅이 과일을 앙얼의 입에 갖다 댄다. 앙얼은 먹고 싶지 않다며 입을 돌린다. 주뱅이 화가 치밀어.
“씨발 글먼 저 대밭이다 버릴꺼나? 들짐승 날짐승들 쳐먹으라고!”
앙얼은 답변 없이 한숨을 내뱉는다.
“꺽정 말고 이거나 쳐먹으랑께! 어린 년 뱃속서 아 새끼가 곰방 나올 참인디, 그 늙은년이 무신 정신으로 애 날년 놔두고 죽막동까지 달려가가꼬 수성당에 해적이 나타났다고 밀고를 허것냐고!”
주뱅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앙얼은 걱정을 털어내지 못한다. 송씨와 조소아의 사정을 제 눈이나 귀로 보고 듣지 못한 탓도 있으리라.
“여울굴로 거볼꺼나”
주뱅의 제안에 앙얼의 귀가 번쩍 트인다. 송씨가 출산을 앞둔 임산부를 방치하고 죽막동으로 달려갈리 만무한데다 여울굴로 향하는 송씨와 임산부의 걸음걸이가 그리 빠르지 않기에 당장 뒤를 밟는다면 여울굴로 향하는 두 여자를 따라 잡을 수 있을 성 싶다.
주뱅의 말이 “맞네”, “그르네” 대꾸도 없이 없이 앙얼이 걸음을 뗀다.
“야 새꺄 으딜 갈라고?”
앙얼의 행선지가 어딘지 알 수 없어 주뱅이 묻는다.
“자아 잔말 말고 따아 따라 오오 오라고 새에 새꺄! 후우 후딱 여어 여울굴 가아 가보게”
주뱅도 발걸음을 떼며 묻는다.
“이 음식들 버릴꺼나?”
앙얼은 답변이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