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소중함을 언급하는 명언 중 자주 언급되는 구절이 있다.
프랑스 사상가로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볼테르(1694~1778)가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다면 그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맞서 싸울 것”이라는 글귀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작금의 시기에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고을에서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가 지난 3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혹자들은 대선의 승패에 있어 부동산 정책이나 물가, 조국 장관 임명 논란, 페미니즘 등 당시 정부의 실정을 원인으로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론계 안팎에서는 지난 대선 승패의 갈림길에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보고 있다. 언론의 기본 역할인 사실과 객관성, 균형감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뿐 특정후보의 당선과 낙선을 목적으로 한 선택적 기사, 사실 확인도 없는 악의적 보도와 미화 기사 등은 관련 사실에 근접할 수 없었던 국민들의 귀와 눈을 가리며 여론을 혹세무민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한쪽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그 같은 신문과 방송이 ‘언론’이라면 생활정보지인 <사랑방>과 <교차로>는 세계적인 정론지로 평가받는 미국의 <뉴욕타임스>, 프랑스의 <르몽드>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근래 선거정국을 맞아 주민들의 이목이 지역언론에 집중되고 있다. 후보들의 크고 작은 동정은 물론 판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객관성, 균형감, 진실성 등이 후보들 간에 동일한 잣대와 기준으로 적용되는가에 대해 많은 주민들이 의구심을 보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보도의 관점, 방향, 크기는 각 언론사마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재량일 수 있지만 특정사안에 대한 무시나 외면, 선택적 공정, 특정후보군들을 대상으로 한 재탕 기사 등은 언론 종사자의 한사람으로서 ‘이게 언론이 맞나’ 하는 자괴감과 무력감을 받고 있다.
사람이나 조직, 사물의 본질은 위기의 순간이나 결정적일 때 참모습을 드러낸다. 언론은 권력과 금력에 대한 감시자이거나 심판이지 경기를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다. 선거 시기에 있어 심판이라는 역할보다 선수로서 뛴다면 언론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역인 배우 황정민씨가 부패한 동료 경찰에게 “우리(경찰)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한 대사는 유명하다.
그렇다. 지역 언론사가 돈이 없지, 자존까지 내려놓는다면 한낱 찌라시만도 못할 뿐이다. 설상가상 ‘말할 권리’를 외부 압력도 문제거니와 자기 검열을 통해 스스로 포기한다면 너무나 서글픈 언론의 현실이 아닐까.
저마다 위치한 자리에서 본연의 역할을 해야 가족이나 회사, 지역사회의 미래가 있다. 특히나 독자들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이용해 활동하는 공공가치재인 언론사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역언론의 현재는 지역사회의 미래를 투영하기 때문이다.
김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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