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차세대'로 '세번의 시련' 겪어
'호남 차세대'로 '세번의 시련' 겪어
  • 영광21
  • 승인 2006.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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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은 누구인가
중앙무대에서 쌓은 능력과 추진력, 인맥 주목
박주선 민주당 인사영입위원장은 '차기 검찰총장감, DJ정부 개혁실세, 호남의 차세대 리더'라는 영광을 누렸지만, '세번의 구속, 세번의 무죄'라는 사법사상 유례없는 수난을 당했다.

박 위원장은 검사 시절 차기 검찰총장감으로 손꼽혔다. 호남인맥이 홀대받던 시절 뛰어난 일처리 능력과 청렴·강직함을 자산으로 승승장구했다.

박 위원장이 정치와 인연을 맺은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통해서다. 대검 수사기획관이던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서 고발한 '김대중 후보 비자금사건'의 수사유보를 이끌어냈고, 국민의 정부 출범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사정과 개혁을 주도했다.

이때 DJ의 두터운 신뢰를 받아 DJ로부터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DJ는 박 위원장이 법난을 겪을 때마다 '내가 부르지 않았으면 검찰총장이 됐을 텐데…' '나를 보고 이겨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초기 개혁과정에서 재벌과 야당, 그리고 보수언론이 합세해 제동을 건 사건이 '옷로비사건'이었다. 재벌의 로비가 실패했고, 재벌 회장이 구속된 사건을 역으로 정권의 도덕성 시비로 몰아간 사건이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구속기소됐지만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위원장은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아성인 화순 보성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정치권에서 '호남의 차세대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의 두번째와 세번째 구속과 무죄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에 일어났다. 검찰은 나라종금, 현대건설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다시 그를 묶었다.

하지만 혐의발표 시점부터 정치적 사법적 논란이 일었다. 정치자금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하는 등 법 논리를 무시하고, 형평에 맞지 않는 기소로 '표적수사',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결과는 역시 '무죄'였다.

이후 정치권에선 박 위원장의 '세번 구속, 세번 무죄'가 정치쟁점화 됐다.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박주선 청문회' 주장이 나왔고,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에서 방지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두번째와 세번째 수난을 당하는 사이 박 위원장은 17대 총선에서 옥중 출마했지만 애석하게 낙선했다.

'인고의 터널'을 지나 정치재개를 선언한 박 위원장은 인사영입위원장으로서 '창조적 파괴론'을 제기해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를 위해 민주당의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지방선거를 전후해 시작될 정계개편에서 민주당이 중심에 서기 위한 방안이었다.

박 위원장은 1월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남도지사 출마를 공식선언했고, 31일 전남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 지역순회 등 지지세 확산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역정가에선 그의 능력과 추진력, 그리고 인맥을 주시하고 있다. 중앙무대에서 검증된 능력과 인물경쟁력이 탄력을 받을 경우 민주당 경선 구도와 지방선거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