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해방의 빚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20세기의 시작은 일제 식민지의 어두운 그림자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45년 8월15일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해방은 우리의 힘에 의해 '쟁취한 해방'이 아닌 연합군의 승리에 의한 '주어진 해방'이었다.
이러한 해방의 제한적 의미는 한반도의 새로운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즉, 해방과 함께 북한은 소련군정이 남한은 미군정이 각각 실시됐다. 그리고 분단. 한국전쟁, 최근의 여중생 압사사건과 미군기지의 폐유 무단 방류 등 21세기 현재도 우리는 '해방의 빚잔치'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격동의 20세기 영광과 영광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거울에 비친 20세기 영광은 자화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그리고 20세기 영광의 자화상을 만들어낼 '기록'의 점자는 충실한가. 불행하게도 답은 '글쎄'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본지가 창간과 함께 영광지역 향토사 점검 및 발굴을 위해 지난 100년간의 영광지역 역사에 대한 글을 게재합니다. <영광지역 격동의 세월 20세기>라는 제하의 기획연재는 영광지역 향토사에 다년간 몸담은 목포대 박이준 호남학연구소 전임연구원께서 원고를 매주 집필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진설명
광흥학교 제1회 졸업기념사진
1909년 영광군 사립 광흥학교 1회졸업생들과 교직원들의 기념사진이다. 이사진으로 미루어보아 광흥학교의 교사는 영광향교의 명륜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명륜당 전면이 촘촘한 유리창문으로 짜여있어 이채롭다. <자료제공·협조/사진작가 일포 김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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