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의 몰락으로 위협적인 가상의 적이 사라진 다음에 국내여론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것이 어려워진 미국의 집권세력은 세계 도처에 새로운 적들을 많이 만들어 왔다. 북한과 이라크, 이란 등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적들에 해당한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사일을 발사하기는 어렵다. 미사일을 정말 발사할 경우에는 이를 빌미로 그렇지 않아도 대북 압박에 노심초사하는 미국에게 정당성을 선물하게 된다는 점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미사일 발사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북한의 저의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손짓에 해당한다. 북한의 미사일 위기조성 목적은 '발사 카드'를 적절히 활용하여 협상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는 관측이 유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북한의 태도에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의중이 다분히 담겼다는 사실은 유엔대표부의 입장이나 총련의 기관지를 통해 이미 충분히 암시되었다고 하겠다.
또 이란과는 직접 협상을 하지 않겠다던 미국이 지난달 이란과의 협상을 제의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6자 회담의 미국쪽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초청한 사실에서도 북한의 이런 의중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북한의 계산된 의중을 정확하게 읽은 리처드 루거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 "미국을 사정권에 뒀다면 북한 미사일은 북-미 양자간 문제"라고 말한 것도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위폐문제와 인권문제 등을 제기해오면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온 까닭에 북한으로서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이다.
미국의 압박은 금융제재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안팎에서 군비증강과 군사훈련을 통해 북한을 끊임없이 옥죄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북한이 선택한 미사일 시험 발사 그 자체는 알고보면 국제 조약이나 국제법에 저촉되는 행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과 미국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미사일 발사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북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라면 아주 위험한 선택인 것이다. 실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미국이나 일본이 이를 이용하여 북한에 대한 압박과 고립정책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점은 한국정부가 그러한 대북제재 조치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점이다. 여러 난관 속에서도 어렵게 남북경협과 6·15행사 공동개최 등을 통해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위한 그동안의 숱한 노력들이 일거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결국 감내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할 것이 뻔하고, 그 결과물은 모든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더욱 요원하게 하는 상황만 초래할 뿐이다.
저작권자 © 영광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