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지난 4월 2일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70명 중 256명이 참가한 가운데 찬성 179표 반대 68표 기권 9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연설을 통하여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을 택할 수밖에 없는 고충을 이해해 달라고 하였다. 여기서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미국과의 관계이기에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갑갑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외한의 객쩍은 지식으로 미국을 해부해 본다.
우선 미국은 거대한 나라이다. 4개의 표준시간대로 구분될 정도로 넓은 땅덩이가 한반도의 반쪽에 사는 우리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리고 그 넓은 땅에 묻힌 자원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역사는 기껏 200여 년에 불과하지만 광대한 평야를 이용한 농목업의 발달로 굴지의 농업생산국이면서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하여 공업화를 이룩한 선진공업국이다.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모두 전승국쪽에 가담하여 물자와 자본의 공급국으로서 방대한 자본축적에 성공하여 산업자본주의국가의 지도국가 지위를 구축한 초강대국이다.
다음으로 미국은 군사국가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의 막대한 군사비외에도 미국이 군사국가라는 증거는 과학기술 연구분야에 대한 군사와 민간별 투자로도 명백하다. 일본과 독일이 15 : 85이고, 영국은 40 : 60이며 이탈리아는 압도적 민간분야 주도인 10 : 90인데, 미국은 70 : 30일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자의 군사 대 민간 분야비율도 3 : 1에 이른다.
미국은 이제 농산물과 전쟁무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해도 진실에서 과히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미국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이다. 친구는 친구고 장사는 장사라는 심보를 가지고 있어서 행여 밑지는 장사라도 할 것 같으면 안면을 바꾸고 나온다.
지금 벌이고 있는 이라크 전쟁만 해도 그렇다. 1979년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할 때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고 탄저균을 비롯한 화학무기기술까지 주었으면서 이제와서는 자신들의 통제를 따르지 않자 얼토당토 않은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자유와 정의를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항상 지배계급의 이익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들의 합리적인 정신에만 맞으면 어제의 적과도 오늘 악수를 나누는 냉혹하고 간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위에서 대충 살펴본 미국은 국내경제구조를 군사화해놓고, 그 결과로 무역경쟁력 저하와 무역부채증대를 전쟁무기 판매의 강요와 무역 문호개방압력으로 충당해야 하니 세계의 평화와 협력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배워야 할 많은 이점과 성취의 장점을 지니고 있는 사회이다. 약3억에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이다보니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가 공존한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회를 규정짓는 잣대는 그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 점이 실로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회를 보면서 그 사회의 지배세력을 보는 한편 그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다른 쪽이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한다. 인류사회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 인류에게 필요한 자연의 법칙은 상생이다.
재래식 전쟁과는 달리 현대전은 자칫 잘못하면 삶의 터전인 지구를 수없이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의 가공할 무기로 무장한 상태이기에 상생의 원칙이 절실하다.
서로 같이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의 어원은 rachamin으로 '어머니의 자궁'을 뜻한다. 생명을 잉태하여 품어내고 보살피고 살려내는 숭고한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마음들이 모여서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일만이 바로 폭력 지향의 세계를 평화 지향의 세계로 바꾸는 근원적인 힘이 될 것이다.
박찬석<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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