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지역 격동의 세월 20세기 ① - 연재를 시작하며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였다. 즉, 밖으로는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과 안으로는 신분제의 붕괴와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중세사회의 봉건 질서는 급격히 동요되었다. 그리고 1876 개항과 1905년 을사조약을 거치면서 결국 1910년 일제병탄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20세기의 시작은 일제 식민지의 어두운 그림자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해방은 우리의 힘에 의해 '쟁취한 해방'이 아닌 연합군의 승리에 의한 '주어진 해방'이었다.
이러한 해방의 제한적 의미는 한반도의 새로운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즉, 해방과 함께 북한은 소련군정이 남한은 미군정이 각각 실시되었다. 그리고 분단. 한국전쟁, 최근의 여중생 압사사건과 미군기지의 폐유 무단 방류 등 21세기 현재도 우리는 '해방의 빗 잔치'를 하고 있다.
격동의 20세기 영광의 자화상 찾기
그렇다면, 격동의 20세기 영광과 영광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흔히들 역사는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거울'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거울에 투영된 자화상은 '기록'이라는 점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20세기 영광은 자화상은 어떠한 모습일까. 그리고 20세기 영광의 자화상을 만들어낼 '기록'의 점자는 충실한가. 불행하게도 답은 '글쎄'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영광의 사례는 아니지만, 최근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미군의 양민학살의 대표적인 사례로 '노근리 사건'이 메스컴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근리 사건'의 자화상을 만드는 기록의 점자는 우리의 '기록'이 아닌 미국의 기록이었다. 이것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이를 낳았을 때, 제일 먼저 그 아이에게 입힌 옷을 '베넷 저고리'라 한다. 그리고 탄생의 증거로 고운 보자기에 '베넷 저고리'를 곱게 싸서 옷장 깊숙한 곳에 소중히 간직한다. 그러나 그 후 아이가 자라면서 남긴 흔적(=기록)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베넷 저고리'에서 '상복'까지
이제부터 우리는 '베넷 저고리'에서 상복까지 기록의 점자를 챙기지 않으면, '국산 기록'의 점자가 아닌 '수입산 기록'의 점자로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야 한다.
그 동안 한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도 다분히 중앙중심적, 집권자 중심의 역사가 전부인 것처럼 서술하였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이른바 '민중사관'이 대두되면서 지방과 민초들의 역사를 서술하자는 새로운 시각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흔히들 '역사가 없는 민중의 역사'라는 볼멘 소리로 연구의 한계를 지적해 왔다. 일면 타당한 견해지만, 꼭 그렇게 지방과 민중의 역사를 그리는데 '역사가 없는' 황무지 상태는 아니다. 바로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관심으로 다가 선다면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역사의 붓으로 그린 20C 영광의 풍경화
필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100년동안 영광사람들의 흔적을 기록과 구술, 영상을 통해 하얀 백지 위에 역사의 붓으로 영광의 풍경화를 그리고 싶다. 그리고 20세기 영광의 풍경화는 독자와 함께하는 공동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 100년동안 영광과 관련한 개인 사진이나, 생활 물품, 포스터 등 종류에 상관 없이 제보를 주시면 영광의 풍경화에 새로운 색들이 가미 되어, 풍요로운 우리의 자화상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앞으로 영광의 20세기 풍경화를 그리는데 영광군민들의 많은 도움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끝으로 『영광21』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앞으로 『영광21』이 21세기 영광의 자화상을 그리는데 '기록'의 점자 역할을 충실히 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않는다.
박 이 준<목포대 호남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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